인풋

  • Rheinberger, Hans-Jörg (2010), On Historicizing Epistemology: An Essay, Ch. 2-5.

이야기

2025-10-20 Mon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가죽재킷을 입고 나갔는데 하루 내내 쌀쌀해서, 내일은 더 단단하게 추위 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3주만에 운동했다. 전날 밤에 잠에 잘 못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침에 운동하는데 컨디션이 별로 안 좋았다. 살이 생각보다 많이 찌지는 않았는데 정말로 식단조절을 해야할 것 같은 상황. 더 늘어나서는 안 된다. 반복하는 수밖에 없겠지.

아침부터 내내 연구과제 조교 일을 했다. 역시 누군가가 시키면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하루에 깊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고, 그걸 너무 오버하려고 하면 안 된다. 인지적 부담이 높은 것 먼저, 자기 직전에는 여유를 챙기며 할 수 있는 활동을. 하루에 논문 하나씩은 읽고 싶다. 그러면서도 고꾸라지고 싶지는 않고. 잘 사는 게 어렵다.

2025-10-21 Tue

이럴 수가! 오늘은 더 춥다. 아침부터 컨디션이 안 좋았는지 코피도 났는데, 어찌저찌 운동도 다녀와서 일했다. 문학 연구자의 발표를 들으면서 결국 시간을 들여 꼼꼼히 자료를 보는 게 단단한 발표의 힘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업무를 처리하느라 공부는 전혀 하지 못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계속 깔끔하게 털면서 가야 나중에 덜 힘들 것 같다. 생각과 준비를 잘 해서 이메일 야리토리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일해야겠다. 어떤 업무는 오프라인으로 바로 처리하는 게 훨씬 덜 번거롭다.

저녁에는 오랜만에 여유를 찾은 애인과 맛난 걸 먹고 가상세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런 허무맹랑한(과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신체적·심리적 여유가 생긴 것에 감사한다.

2025-10-22 Wed

별다른 성과 없이 보낸 듯한 하루. 어제 맥주를 마셔서 아침 운동도 안 갔고, 별로 가치가 없는 글을 읽었고, 이리저리 자료를 둘러보다가 연구를 진전시키지는 못하고 퇴근했다. 다만 이런저런 쌓여 있던 잡무를 처리했다. 몇 달 동안 메일 앱 Inbox에 쌓여 있고 너무 귀찮아서 처리하지 못했던 영수증 처리를 해치우니 오랜만에 깔끔하게 집청소를 한 기분. 인박스를 제때제때 빈 채로 유지하는 게 무례를 덜 범하기 위한 덕목이지 싶다.

미국 학자들의 블로그랑 CV 둘러보는 게 재미있다. 나도 이 블로그랑 공식 페이지를 틈틈이 관리해야 하는데, 다양한 시도를 해 봐야겠지. 매일매일 일기 쓰는 것도 자기를 사랑해야 할 수 있나 보다.

석사논문 연구에 코멘트를 반영해서 훨씬 개선해야 하는데, 박사에서 추진하고 싶은 프로젝트인 『사밀개종』 관련 자료들을 둘러보는 게 재미있어서 그러고 놀았다. 네덜란드어와 독일어를 미리 준비해 둔다면 이 텍스트의 중역의 연쇄에 대한 박사논문을 쓸 수 있을까? 우선 번역 과학사 주제로 열리는 컨퍼런스를 추천받았는데, 초록을 한번 써 내 보고 싶다. 시간이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도전.

2025-10-23 Thu

추운 날씨도 꽤나 익숙해졌고, 해치워야 하는 일들도 하나하나 처리했다. 2시간짜리 세미나 2개를 했더니 하루가 금방 날아가 버렸다. 미리 계획해 둔 활동이 없어서 여유로웠다고 해야 할지, 그냥 시간을 보냈다고 해야 할지. 처음 만나는 사람과는 대면 상호작용이 편한데, 정기적인 모임이 되면 Zoom으로 만나는 게 이제 꽤 익숙해졌다. 몇 년 전에 전역하고 처음 Zoom을 켰을 때 당황하던 경험이 생각난다. 계획상 라인베르거의 On Historicizing Epistemology 를 다 읽어야 석사논문 수정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시간이 안 난다. 하루만에 해낼 수 있는 일 같은 건 없다는 걸 이제 깨달아야지. 조바심내지 않고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다.

2025-10-24 Fri

드디어 공부를 할 수 있었던 날. 월급을 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이런저런 일들을 해치우는 건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다. 그만큼 인풋 아웃풋 속도가 느려질텐데, 이런 일들이 없으면 또 연구만 하는 건 지루하겠지. 적당히 타협하고 귀찮은 건 빨리빨리 치워 버리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프로젝트 모임은 교수님들 인품이 나이스하고 효율적 일처리 방식을 다들 탑재하셔서 지금까지 수월하게 진행되는 듯. 매끄럽게 문서를 만들고 받고 넘기고 있다.

하루를 시작하는 데 3시간, 마치는 데 1시간을 온전히 써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연구일지를 남기는 것도 생각보다 귀찮다. 오늘은 라인베르거의 On Historicizing Epistemology를 거의 다 읽었다. 숙독해야 하는 엄청나게 밀도 높은 텍스트. 우선 이번에는 설렁설렁 읽고 나중에 이 주제로 강의를 꾸리거나 할 때 다시 찾아야 할 것 같다. 대륙철학적인 전통에서 인식론/과학철학의 역사를 쓰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인데, 그 어려움을 헤쳐나갈 좋은 개론서다. 앞으로 『사밀개종』 번역사를 연구하게 된다면 번역학의 성과들, 특히 데리다의 텍스트 분석을 동원해 보고 싶다.

2025-10-26 Sun

어제는 학회가 있었고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연구일지를 쓰지는 못했다. 하루가 짧고 체력은 부족하다. 그렇게 늦게 자지도 않았는데 잠을 자다깨다 하다 보니 오후 4시 정도에야 정신을 차렸다. 고등학교 때가 길게 느껴졌던 건 술을 금지당했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사용한 시간이 지금보다 더 많았던 것 같다. 지금은 체력도 줄고 생업(?)도 있기 때문에 내가 자가발전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의 총량이 엄청 줄었다. 그걸 지속 가능하게 마지막까지 짜내 보려고 아등바등.

연구에 점점 몰두할수록 사회와는 유리되는 것 같다. 연구자 공동체에 녹아드는 것도 쉽지 않고 (선생님들께 소개할 ‘나’가 누구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 바깥의 “사회”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 이공계에 있었다면 이 외로움이 더 빨리 왔을까? 아니면 그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연구에 몰두했을까? 연구에 온 힘을 다해 보고 싶음과 연구에 과몰입하고싶지 않음이 충돌한다. 후자를 택하니 안정적이지만 재미가 없다. 오늘은 어차피 날린 만큼 별로 힘쓰지 않고 다음 주를 준비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