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풋

  • Rheinberger, Hans-Jörg. (1997) Toward a History of Epistemic Things: Synthesizing Proteins in the Test Tube.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Chapters 10 and 11.

아웃풋

  • 석사논문 분량 맞추기 챕터 2

이야기

2025-09-15 Mon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 것 같다. 더 많은 걸 신경써야 한다. 더 멀리 내다봐야 기한에 맞추어 일을 끝낼 수 있는데, 지금은 이틀 정도만 앞으로 내다보고 있다. 글쓰기에 드는 시간을 계산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하니 최대한 많은 시간을 확보하는 전략을 쓸 수밖에 없다. 읽기가 편해도 계속 글을 쓰려고 화면을 켜야 하고.

어제 “Development of NMR”을 다 읽었으니 이제 쓰고 싶은 역사적 서사가 다 구축되어야 한다. (시공간적으로 더 멀리 나갈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 라인베르거Hans-Jörg Rheinberger의 개념인 표상공간Space of Representation이 과학 기기에게 준 영향이 아직 불명확하다. 군더더기가 없지만 할 말은 다 넣은 담백한 논문을 쓰고 싶다.

전체 논문의 서사에 해당하는 Plan 문서 작성 중. 크게 다섯 스텝으로 나뉘는데, 그 중 첫 두 스텝에 대한 논리적 구도를 고도화했다. 3→4 과정이 살짝 비어 있는데, “Development of NMR” 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여러 요소들을 쳐내고 이해할 수 있는 뼈대를 구축하기. 내일은 Plan을 다 써서 계속 참조할 예정이다. Rheinberger의 챕터 10, 11을 읽기로 마음먹었는데 시간이 없었다. 내일로 미루기.

2025-09-16 Tue

오늘은 일터에서 세미나가 있었다. 연사께서 이쪽 전공이시라 세미나가 끝나고 진로상담을 겸한 소셜라이징을 했다. 과학사 연구자들은 다들 독특한 아우라를 풍기는 것 같아서 신기하다. 이공계와 인문사회계를 나누는 분과 구분을 기민하게 교란하려는 분투. 결국 두 학제 사이의 어떤 점으로 수렴하는 것일지, 아니면 축 자체를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탐색하는 것일지. 어쨌든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아예 헛발질은 아니라는 확신을 키우고 싶다.

공부는 안 했다. 15일에는 전체 논문의 큰 틀을 짜는 걸 다 못 끝냈는데, 오늘은 근무도 있고 외향성도 열심히 써서 좀 소진됐다. 잠자는 시간이나 맞추고 내일 힘이 더 나기를 바라기로. 퇴근하고 집에 와서 뭔가 할 수 있으려나 했는데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이 블로그 만들고 공부하는 데에 시간을 다 썼다. 공식 튜토리얼을 보고 따라했어야 하는데 어떤 분이 따로 정리해 둔 걸 보고 첫 블로그를 만들었다가 보니 동기화를 이상하게 하게 됐다. 첫 단추 잘못 끼우면 블로그 전체가 망가질 것 같아서 갈아엎고 튜토리얼대로 다시 만들었다. 그래도 그 정리 블로그 덕분에 툴에 진입할 수 있었으니, 어떻게든 생각만 하지 말고 시간 되는 대로 한국어 블로그라도 찾아서 시도를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첫 작품부터 완벽할 수는 없으니.

이제 Google Analytics를 연결해서 방문자가 늘어나는지 트래킹하는 법 배우기, 그리고 로컬 옵시디언이랑 깃헙을 동기화하는 Shortcut을 만들어야 한다. 오늘 Shortcut은 도전해 보고1 다른 것들은 하나하나 추가해 나가야겠다. 컨텐츠 자체에 집중하면서도 자유도를 엄청 높인 Quartz 좋은 것 같다. 근데 그러면서 논문도 좀 쓰기를.

2025-09-17 Wed

늦잠을 잤다. 운동 스킵은 원래 하려고 했었지만 열두시가 다 될 때까지 잘 줄이야. 이번주도 규칙적으로 빠릿하게 살기는 글른 것 같다. 아침에는 비가 왔다. 비가 그치면 나가야지, 하고 마음먹었더니 몸에 힘이 쭉 빠졌다. 아침에 집안에서는 업무에 착수하기까지 마음가짐이 잡히질 않는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고 움직이고 씻고 다른 장소에 가서 앉을 것. 

비가 그치고 학교에 갔다. 연구소 업무를 처리하고 url 링크가 작동하는 메일 발송에 익숙해지고 나니 벌써 시간이 늦었다. 연구를 해야겠다는 마음과 실제로 연구에 착수하는 건 완전히 별개다. 연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일 경우 조급해하지 않고 회복과 일상에 집중하는 것도 좋겠다. 걱정해서 나아질 종류의 일이 아니니까. 앞으로의 내가 논문을 열심히 쓸 거라 믿자.

저녁에 라쉬코프스키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1,2,3번을 들었다. 피아노 연주와 지휘를 같이 하는 게 말도 안 되는 재주넘기를 요했다. 이걸 어떻게? 그리고 이걸 이렇게 매끄럽게? 놀라웠다. 협주곡에서 지휘자가 사라지면 협연자-지휘자-오케스트라의 정보의 연쇄에서 중개자가 사라졌다. 유통 마진 없이 직거래로 이루어지는 협연자와 오케스트라의 주고받기는 스릴 넘쳤다. 관객으로서의 시선도 지휘자-협연자로 분산되지 않고 전체적인 연주의 구도가 가운데의 피아노로 모이도록 설계돼 몰입할 수 있었다. 오케스트라가 피아노 소리에 맞추는 부분과 협연자의 직접 지휘를 받는 부분이 교대로 나오는데, 확실히 후자에서는 타이밍이 딱딱 들어맞고 전자에서는 연주자들이 서로 기민하게 타이밍을 살피는 것의 차이가 흥미로웠다.

2025-09-20 Sat

지난 며칠의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다. 중요한 회의 전날에 술을 마시게 되어 맥주 대신 숙취가 없는2 소주를 마셨는데 패착이었다. 필름이 끊기고 몸이 하루만에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졌다. 헛구역질과 빗물을 뚫고 회의에 갔다. 처참했다. 괜찮은 척 혼신의 힘을 다해 30분간 회의를 마치고 집에 다시 돌아오는 길에도 생각했다. 이제 정말 술을 끊을 때가 온 게 아닐까? 더 이상 내 커리어와 작업과 심신이 알코올에 발목잡히는 게 싫다. 보통은 24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48시간이 지나도 몸에 힘이 쭉 빠지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게 잦아들지를 않는다. 스스로가 좀 밉다. 그러면서도 어제 오늘 회의 말고는 따로 공식적 일정을 잡아두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도 생각한다.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서두르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걸까? 마감기한은 너무 급박하게 다가오고 나는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그럼에도 봐줄만한 자료를 만들어서 행사를 치뤄 내고 지원접수를 하고 아등바등해야 할 것 같다. 좀 더 활동성을 줄이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을 늘려야 하나? 좋은 연구자가 되려면 사회생활은 어느 정도 접어두어야 하는 걸까. 걱정과 긴장 속의 하루하루. 술과 잠이 발목을 잡는다. 이제는 삶의 불확실성을 좀 통제하고 싶다. 그러기 어려운 세상이지만.

밤에는 조금 정신을 차리고 글을 썼다. 석사논문의 전체적인 흐름에 대한 쪽글이다. 이제야 이걸 완성했다는 게 어이가 없지만 계속 수정하고 참조해 가면서 글을 수정해야겠다. 억지로 연결을 만들지 않으면서, 말이 되는 서사를 짜고, 그런데 그게 선행연구랑은 달라야 하고, 쉽지 않다. 내일은 이미 읽었던 선행연구들을 다시 보면서 흐름에 맞게 내 글에 넣기. 글을 써야 글이 된다.

2025-09-21 Sun

몸은 여전히 덜 좋았지만 그래도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해졌다. 앞으로의 5일 동안은 치열하게 살아야 할 것 같다. 계속 노트북에 붙어 있으면서 글을 고치고 해야 할 일들을 처리해 내고. 금요일에 마감인 게 두 개나 있으니 시간과 체력 안배를 잘 해야 한다. 고꾸라지지 않게 수요일에는 웬만한 일들을 다 처리하고 목-금 동안에는 손만 봐서 제출할 수 있도록 하자. 하루에 두 챕터씩 작업하면 할 수 있다.

그리고 큰 그림을 그려 놓고 나니 마음은 조금 편해진 것 같다. 마감을 맞출 게 걱정되지만 갈 길이 어느 방향이고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는 정해져 있는 느낌. 주초에 조금 무리하고 후반부에 여유를 가져 볼까? 결국 전혀 그렇게 안 되겠지만.

Footnotes

  1. 그냥 몇 번 복붙하면 될걸 버튼 하나로 해결하고 싶어서 이러고 있다. 이 각주도 블로그가 잘 굴러가나 확인하려고 일부러 만들어 봤다.

  2. 명제 “증류주는 발효주보다 숙취가 적다”에 붙어 있는 “단위 알코올 함량당” 조건을 꼭 인지해야 한다. 꼭. 무지막지하게 마시면 발효고 증류고 뭐고 몸이 아주 심각하게 망가진다. 회복에 걸리는 시간으로부터 점점 늙어감과 삶의 덧없음을 체감한다.